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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빌레몬’ 조덕삼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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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김이 작성일 24-08-03 14:20 조회 60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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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교회를 세운 사람은 그 고을의 지주 조덕삼입니다. 그는 그 지역의 가장 큰 부자로 집안 대대로 유교를 믿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집에 미국인 선교사 테이트(한국명 최의덕)이 머물게 됩니다. 그때 조덕삼은 용기를 내어 이 백인 선교사를 자신의 안채에 모시고 물었습니다. “왜 살기 좋은 나라를 포기하고 이 가난한 조선 땅에 왔습니까?”

 

이때 테이트 선교사는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은 하나님이 당신을 특별히 사랑하시기 때문이며, “이곳에 꼭 교회를 세울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수없이 기도했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해 주었을 때 조덕삼은 큰 감동을 받았고, 자신의 사랑채에서 예배를 드릴 것을 제안합니다. 그리하여 1905년 봄부터 그의 집 사랑채에서 예배가 시작되었는데, 이때 조덕삼은 자신의 집에서 마부로 일하던 이자익도 함께 예배에 참석하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신분의 차이를 넘어 같이 성경 공부를 하였으며, 일 년 후 함께 세례를 받고 이후 집사로 임명됩니다. 이후 금산교회는 세례교인이 30명을 넘어서게 되어 장로를 세우는 투표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 조덕삼 지주가 아닌 마부 이자익이 장로로 피택 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당시 조선 사회는 계급사회였기에 다른 교회에서는 천민과 양반이 함께 예배드릴 수 없다는 의식이 팽배해 선교사들이 곤란을 겪던 때였습니다. 그러니 지주가 자신의 머슴을 장로로 세우기는 매우 어려웠음에도 조덕삼은 장로 선출 결과 후에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 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는 이자익은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2년 후 조덕삼도 장로가 되었고, 이자익은 그 이듬해 신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이자익이 신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비와 생활비를 도왔던 사람이 바로 조덕삼입니다. 5년 뒤, 금산교회는 테이트 선교사의 뒤를 이어 이자익 목사를 제2대 담임 목사로 기쁘게 청빙합니다. 조덕삼 장로는 52(1919)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그가 숨을 거두며 자녀들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절대로 우상 섬기지 말고 제사는 지내지 마라. 예수를 잘 믿어 나를 만날 수 있도록 신앙생활 잘하고, 너희들은 내 대를 이어서 목사님을 잘 섬기고 교회를 지켜야 한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3:28)

노민석목사(헤리티지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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